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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된 시간: 현대 세르비아 판화 - 베오그라드 미술학부 선정작
각인된 시간: 현대 세르비아 판화 - 베오그라드 미술학부 선정작
전시일정
2019.10.29 ~ 2019.11.09
참여작가

 

각인된 시간​

​현대 세르비아 판화 - 베오그라드 미술학부 선정작


2019. 10. 29. - 11. 09.

개막식: 10. 29(화), 6.30 pm.


세르비아-대한민국 외교 수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주한 세르비아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전시 <각인된 시간>이 열립니다. 베오그라드 미술학부 출신 26명의 작가들이 창작한 판화 44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세르비아 그래픽 미술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합니다. 


 

 

각인된 시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진리를 알레테이아(λήθεια)’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레테(λήθη)’, 즉 망각에 의해 사라지거나 숨겨진 것을 다시 떠올리고 드러내는 과정을 의미 있게 여긴 것이다. 망각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던져진 존재에게 불가피한 현상이다. 매 순간 죽음이라는 미지의 끝을 향해 가는 여정 막바지에 레테라는 강이 가로놓여 있다는 그리스 신화가 일깨워 주듯, 삶의 흔적은 망각 속으로 잠겨 들기 마련이다. 판화는 이러한 인간의 숙명에 저항하는 기억이라는 능력을 비유적으로 잘 보여주는 매체다. 작가는 아스라히 멀어져 가는 순간을 단단히 부여잡아 돌, 나무, 혹은 금속판 위에 이미지로 새겨서 가둔다. 그 판화 원판에 물감을 바르고 종이를 밀착시킨 후 꽉 눌러 이미지를 거듭 찍어내는 과정은 마치 마음 속에 각인된, 그러나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 시간에 다시 접속하고자 하는 기억의 행위를 물질화하여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데 사진과 디지털 기술을 통해 순간순간을 충실히 재현하고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는 오늘날, 판화는 기억과 관련하여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사진에 고정된 순간은 과거를 물리적으로 매우 유사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사진을 온전한 기억의 보고라고 믿기 쉽다. 하지만 이는 실제 우리의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기억 속에 부유하는 인상들은 사진에 찍힌 이미지처럼 명료하고 완결된 형태를 띠기보다는 개인적이고 모호하며 자유롭게 재편 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편에 더 가깝다. 판화 기법은 이러한 기억의 진실, 다시 말해 각자의 내면에 겹겹이 새겨진 살아낸 삶의 흔적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 그 일렁이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유용하다. 세르비아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다채로운 판화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들 기억 속에 각인된 발칸 반도의 시간을 펼쳐 보인다.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거나 잊어버린 삶의 이면이 드러나는 알레테이아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AAIPS갤러리 학예연구사, 임은민